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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 15-06-04 17:05
[법보신문] 35. 종단개혁의 주역-②지선 스님
 글쓴이 : 최고관리자
조회 : 1,591  
   http://www.beopbo.com/news/articleView.html?idxno=84737 [582]
 
▲ 지선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이 성공하지 못한 근본 이유로 개혁세력의 준비 부족을 꼽았다. 스님은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들이 뭉쳐 이론 체계를 세우고 실천과제를 하나씩 진행해야 했지만 이에 대한 아무런 계획이 없었다”고 말했다.

지선 스님은 1980년대 사회민주화 운동의 상징적인 인물이었다.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민주화의 투사로 나섰고 1987년 6·10민주항쟁도 이끌었다. 사회민주화가 자리를 잡자 스님은 곧이어 종단개혁에 착수했다. 오랜 기간 되풀이돼 온 종단의 구조적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실천불교전국승가회(실천승가회) 지도위원으로 범승가종단개혁추진위(범종추) 결성을 주도했고, 개혁회의에서는 도법 스님과 함께 상임부위원장을 맡았다. 그러나 스님은 1994년 종단개혁에 대해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비록 종단개혁을 통해 제도개혁 등 일정정도의 성과를 냈지만 개혁세력의 사전준비 부족으로 근본적인 개혁을 진행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선 스님을 11월25일 광주 문빈정사에서 만났다.


사회민주화 정착되면서
종단 내부 문제에 관심
지도부 정권유착 등 심각
종단개혁 불가피한 선택

개혁 이후에 대한 준비부족
개혁 대상인물 포섭하면서
개혁불사 취지 크게 퇴색
후유증 현재까지 이어져

▶ 종단개혁은 1980년대 사회민주화운동을 견인했던 실천승가회를 중심으로 한 진보성향의 젊은 스님들이 종단 내부 문제에 관심을 돌리면서 촉발됐다고 볼 수 있다. 종단개혁에 뛰어든 이유는 뭔가?

“1987년 6·10민주항쟁을 계기로 직접 선거를 통해 대통령을 뽑게 됐다. 문민정부가 들어서면서 일정정도 사회민주화의 틀을 갖추게 됐다. 종교인으로서 민주화운동에 뛰어들 명분이 줄어들었다. 그 당시 종단은 지도층이 정권과 밀착하면서 자주성이 심각히 훼손됐고, 각종 비리의혹도 불거졌다. 법과 제도미비로 혼란을 거듭했다. 종단의 문제를 외면할 수 없었다. 종교를 맑게 하는 것은 곧 혼탁한 사회를 정화하는 것이라 여겼다.”

실천승가회는 1993년 3월9일 종단개혁안을 중앙종회에 입법청원하면서 종단개혁에 본격적으로 나섰다. 시급한 과제로 ‘중앙종회의원 선출 직선제’와 ‘종회의원 본말사주지 겸직금지’ 등을 요구했다.


▶종헌개정안이 중앙종회를 통과할 것으로 봤나.
“쉽지 않을 것으로 예상했다. 그러나 종단의 구조적 적폐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였다. 의현 총무원장을 설득했지만 되지 않았다. 당시 원로의장 서암 스님을 만나 종단개혁안이 관철될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간청했다. 그러나 서암 스님 역시 우리의 개혁안을 거들떠보지 않았고 오히려 의현 총무원장을 두둔했다. 심지어 서암 스님은 종정이 된 이후 ‘나는 의현 총무원장을 보살로 생각한다. 그만한 사람이 없다’고 말하기도 했다.”



▶서암 스님은 종단개혁의 필요성을 강조했다는 증언이 많다. 도법 스님도 자신이 종단개혁에 나섰을 때 서암 스님이 의현 총무원장을 강하게 비판했다고 말했다. 서암 스님이 종단개혁에 반대했다는 것인가.
“우리가 종단개혁안을 들고 갔을 때 서암 스님은 ‘종단개혁은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다’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다. 개혁을 하고 싶으면 다른 곳에 가서 스스로 개혁적인 삶을 살면 저절로 되는 것이지, 싸워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우리의 개혁요구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불교적 방식으로 개혁해야 한다는 의미로 보인다.
“물론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런 방식은 개혁세력과 기득권층이 동등한 위치에 있을 때 가능하다. 개혁세력들이 종단 내에서 어느 정도의 기반이 있었다면 서암 스님의 말씀처럼 그렇게 할 수 있다. 그러나 종단의 기득권층이 모든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상황에서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그래서 범종추를 결성했나.
“실천승가회는 종단개혁의 필요성을 꾸준히 부각시켰다. 종단 여론을 확산시켰다. 그 과정에서 의현 총무원장과 관련된 ‘상무대 비리의혹’ 사건이 터졌고, 때마침 총무원장 선거가 닥쳤다. 의현 총무원장은 3선을 추진했다. 그러자 중앙승가대와 동국대 등의 젊은 학인 스님들이 종단개혁에 뜻을 같이 했다. 개혁에 동참하는 인원이 늘면서 연대조직을 구성하게 됐다.”




▶선우도량은 어떻게 설득했나.
“도법 스님에게 범종추 대표를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러나 도법 스님은 이에 대해 부정적이었다. 교육을 통해 종단을 개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도법 스님의 말이 틀리지는 않았다. 스님들의 교육이 제대로 되지 않았기 때문에 역사와 사회의식이 없고, 사회 현실에서 비롯된 고통의 문제에 종단이 나서지 못하고 있는 것이었다. 그러나 무작정 교육에만 매달릴 수 없었다. 당시는 비상 시기였다. 종단 집행부부터 말단까지 썩어가고 있는데 언제까지 기다릴 수 없었다. 일에는 선후가 분명이 있는 것이다. 당시로서는 사람을 바꾸고 종단을 변화시키는 것이 시급했다. 오랜 설득 끝에 동의를 받아냈다.”

▶스님이 직접 나설 수는 없었나.
“내가 나설 수 있는 상황이었다면 왜 마다했겠나. 당시 기득권층에서는 사회운동을 했던 전력을 문제 삼으며 나를 ‘빨갱이’ 혹은 ‘불순세력’으로 몰아붙였다. 그런 상황에서 내가 전면에 나설 경우 개혁은 오히려 실패할 것이라는 게 개혁세력들의 판단이었다. 심지어 개혁세력들은 나에게 범종추 대표를 맡거나 특정단체 모임에 참가하는 것을 막았다. 언론 인터뷰 등도 하지 말 것을 요구했다. 나를 비난하는 것은 감내할 수 있었지만 나로 인해 종단개혁이 좌절되어서는 안 된다고 판단했다.”

▶의현 총무원장의 퇴진을 요구했다. 3선이 직접적인 이유였나.
“당시 의현 총무원장은 개인 비리가 너무 많았다. 스님으로서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도덕적 문제도 터져 나왔다. 권력유착 문제는 심각했다. 상무대 비리의혹은 그 연장선상이었다. 그런 의현 총무원장이 3선을 시도했다.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었겠나.”

▶상무대 비리의혹이 불거졌을 때 실천승가회 대표들은 이기택 민주당 대표를 만나 “상무대 의혹의 진상을 파헤쳐 줄 것”을 청원했다. 일각에서는 개혁세력들이 주장했던 불교자주화에 반하는 행보가 아니냐는 지적도 나왔다.
“상무대 비리 사건은 정권과 종교지도층의 유착에 따른 비리였다. 정치권에서 해결할 수밖에 없는 문제였다. 의현 총무원장의 오랜 집권 동안 더 많은 비리가 있을 것으로 예상했다. 상무대 사건을 계기로 의현 총무원장과 정권의 유착 비리를 모두 밝혀야 한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철저한 조사를 요구하게 된 것이다.”

▶종단개혁 과정에서 폭력사태가 발생했다. 이로 인해 세간의 우려와 비판도 적지 않았다.
“우리는 처음부터 비폭력을 염두에 뒀다. 그런데 집행부가 폭력배를 동원하면서 방어차원에서 폭력을 썼다. 그러나 폭력사태가 발생한 것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부끄럽게 생각하고 참회한다.”

▶의현 총무원장 체제를 무너뜨린 결정적인 계기는 4월10일 승려대회였다. 종정 서암 스님의 금지 교시에도 불구하고 승려대회를 강행한 이유는 뭔가.
“당시 기득권층은 종단의 행정, 입법, 사법의 모든 권한을 가지고 있었다. 종법의 틀에서 우리는 불법 단체였다. 개혁운동이 장기화되면 종단 기득권층과 정권이 손을 잡고 우리의 개혁요구를 무력화시킬 수 있었다. 현대 종단사에서 개혁논의가 번번이 무산된 것도 이런 배경이었다. 개혁세력들은 초조했다. 합법적 절차를 거쳐 개혁한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불가능했다. 승가대중의 힘을 동원해 빨리 진행할 수밖에 없었다.”

▶승려대회에서 종정 불신임을 결의했다. 꼭 필요했다고 보나.
“지금에서야 그럴 필요가 있었겠느냐고 물을 수 있지만, 당시 상황은 절체절명의 위기였다. 잘못하면 종단개혁이 실패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런 상황임에도 종정스님은 단 한 번도 조계사에 나타나지 않았다. 자기 집에 불이 났는데 주인이 나타나지 않는 형국이었다. 오히려 대중의 열망에 찬물을 끼얹었다. 물론 원로들이 주도했지만, 개혁세력 내부에서도 종정스님에 대한 불신과 실망이 적지 않았다.”

▶후회는 없나.
“돌이켜보면 안타깝고 아쉽지만, 당시 상황에서는 불가피했다.”

▶어찌됐든 의현 총무원장이 물러나고 개혁회의가 출범했다. 그러나 개혁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개혁의 대상이 됐던 스님들도 개혁회의로 끌어들이면서 비판이 적지 않았다.
“개혁세력의 준비 부족이 원인이었다. 범종추는 구태적인 종단을 개혁하려는 것에서 출발했지, 총무원장을 몰아내고 종권을 잡고자 했던 것이 아니었다. 의현 총무원장이 사퇴하면서 종단은 무주공산이 됐다. 말하자면 한 해 농사를 짓기 위해 논두렁에 불을 냈다가 산불이 난 형국이었다. 경험과 준비가 없다보니 개혁의 대상이 됐던 인물들이 오히려 개혁회의에 다수 포함될 수밖에 없었다.”

▶개혁회의 상임부의장직을 도중에 사퇴한 것도 그런 배경이었나.
“개혁의 대상이 됐던 사람들이 (개혁회의에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으니 개혁이 될 수 있었겠나. 어렵게 총무원장 직선제를 종헌에 반영했지만 원로회의가 인준을 거부했다. 불교의 자주화를 내걸고 출범한 개혁회의 집행부는 아무런 명분 없이 청와대를 방문했다. 개혁세력 내부에서 분열과 갈등이 시작됐다. 도무지 희망을 찾을 수 없었다.”

▶현응 스님은 “정부를 향해 무조건 강경 대응을 할 수 없었다. 집행부는 정부와 대화를 하는 모습을 보이고 하부조직은 강경한 모습을 택하는 것이 일을 처리하는 데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다. 당시 종단이 서둘러 정부와 타협할 만한 일이 없었다. 어렵고 힘들더라도 긴장관계를 유지했어야 했다. 불교 자주화는 그래야 실현될 수 있었다. 그런데 정부를 향해 제대로 된 목소리 한 번 내보지 못하고 스스로 항복을 선언한 것이다.”

▶무작정 상임부의장직을 그만두고 나오는 것도 최선은 아닌 것 같다.
“어려움이 있더라도 설득하고 참아내려고 했다. 처음 생각했던 제도개혁이 번번이 좌절될  때마다 개혁세력 내부에서 갈등과 반목이 커져 갔다. 심지어 일각에서는 내가 ‘차기 총무원장을 하려는 욕심 때문에 반개혁세력들의 요구를 묵인하고 있다’는 말까지 나왔다. 더 이상 자리를 지킬 의욕이 없었다. 사퇴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판단했다.”


▶어찌됐든 개혁회의가 중앙종회의원과 교구본사주지를 직접 선출하도록 제도를 만들었다.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한 것이라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도 있다. 그러나 선거후유증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개혁회의가 짧은 기간에 법을 만들면서 여러 가지 단점이 있었다. 그렇더라도 그 법 자체를 부정해서는 안 된다. 선거법이 도입되면서 종단의 폐단이 일정정도 개선됐다. 민주적 절차를 통해 대표자를 선출할 수 있게 됐다. 일각에서는 선거제도로 인해 승가의 위계질서가 무너지고 세속화를 부추겼다고 지적한다. 그러나 종단의 대표로 나서기 위해서는 대중의 신망을 얻어야 한다. 자신이 어른이라는 권위도 내던져야 한다. 돈 선거에 대한 문제점도 이를 엄단할 수 있는 제도를 만들어 관리하면 될 일이다.”

▶총무원장 직선제에 대해서는 어떻게 보나.
“직선제는 시대적 요구다. 그렇게 갈 수밖에 없다고 본다. 비구계를 받고 5년이 경과한 스님에게 선거권을 부여해 종단 대표자를 뽑는 방안이 필요하다.”

종단개혁의 주역이면서도 그동안 종단개혁에 대해 실패한 개혁이라고 말했다. 그렇게 생각하는 이유는 뭔가.
“종단개혁이 완전히 실패했다고 단정하지는 않는다. 종무행정이라든가, 예산문제, 포교, 승려교육 등에 대한 일정 정도의 성과를 이뤘다. 다만 개혁불사의 본질적인 정신이 퇴색됐다는 점에서 냉정한 비판을 하고 있는 것이다. 개혁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개혁세력들이 뭉쳐 이론 체계를 세우고 실천과제를 하나씩 진행했어야 했다. 그러나 그 당시 개혁세력들은 충분한 준비가 없었다. 개혁을 이끌 인물도 부족했다. 이렇다보니 개혁과 무관한 인물들이 자리를 차지했다. 처음부터 거꾸로 가는 개혁이었다. 그 후유증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구태 인물들이 종권을 차지해 좌지우지하고 있고, 법과 제도를 이용해 관료화되고 있다.”

▶종단이 어떻게 변해야 한다고 보나.
“크게 3가지라고 본다. 우선적으로 계파 이기주의에서 벗어나야 한다. 계파의 이해관계에 따라 권력과 이권을 나눠 갖는 구조가 되풀이 되면 종단의 미래는 없다. 교구중심제를 실현해 중앙집권제의 한계를 극복해야 한다. 총무원장에게 모든 권한이 집중돼 있으니 권력을 두고 분란이 일어날 수밖에 없다. 상벌에 대한 분명한 기준도 필요하다. 죄가 있어도 권력층에 있으면 처벌되지 않고, 오히려 중용된다면 누가 종단을 신뢰할 수 있겠나.”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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