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와 지명위원회의 기준과 원칙에 따라 이미 확정된 역명을 바꿔달라는 일부 개신교계의 움직임이 오히려 사회 갈등을 부추긴다는 비판에 직면해 있다. 사진은 오는 28일 개통을 앞두고 있는 9호선 봉은사역.

 

일부 개신교 단체와 언론이 오는 28일 개통을 앞두고 있는 봉은사역명 철회 요구를 주장하고 나선 것과 관련해 실천불교전국승가회가 “지역의 역사와 전통을 무시한 편협한 비판을 중단하라”고 요구하고 나섰다.

 

실천승가회는 지난 4일 발표한 입장문에서 “서울시가 봉은사역명을 확정해 고시한 것은 한국 전통문화와 지역 특수성 등 객관적이며 공정하게 결정된 사안”이라며 “이번 사안을 종교 간 갈등 양상으로 몰고 있는 일부 개신교 단체와 언론은 무책임한 행보를 즉각 중단하라”고 촉구했다. 

 

서울시 또한 개신교 측의 주장에 당혹스럽다는 입장이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역명 제정 원칙에 따라 역사학자와 각계 교통전문가 등으로 구성된 서울시지명위원회가 역사성이 있는 봉은사역이 적정하다고 판단해 내린 결과”라며 “반경 500m 인근지역 주민들과 자치구 지명위원회, 해당 역 운영기관과 이해관계자들의 의견 청취 등을 통해 1년에 걸쳐 심사했다”고 강조했다. 실제 강남구청이 지난해 1월 실시한 지역 주민들의 선호도 설문조사 결과 봉은사역(60.5%)이 코엑스역(35%)을 압도적으로 앞섰다.

 

역명은 대부분 역명 제정 기준 원칙에 따라 지방자치단체 심의를 거쳐 결정된다. 역명 제정 기준에 따르면 ‘일반적으로 많이 불리우며 해당지역과 연관성이 뚜렷하고 지역실정에 부합하는 옛 지명 또는 법정동명 가로명’ 등을 우선적으로 고려한다. 우선 사항에 부합하지 않는다고 판단될 때는 역사적 인접성 뿐만 아니라 이전 우려와 지역의 대표성 등을 포함해 복합적으로 판단하게 된다. 서울시는 역명 제정 기준 원칙에 따라 지난해 12월18일 서울지하철 9호선 연장구간(논현역~종합운동장) 5개 역명을 언주역, 삼성중앙역, 봉은사역, 선정릉역, 종합운동장역으로 확정지었다.

 

지난해 4월 서울시지명위원회는 1차 심의에서 ‘역사성이 있는 봉은사가 적정하며 2호선 삼성역에 이미 무역센터가 병기돼 있어 원칙상 불허한다’고 결정했다. 이어 6월, 재심의에서도 9호선까지 코엑스를 병기할 경우 시민들에게 혼선을 줄 수 있다는 점을 들어 개정사유가 될 수 없다고 판단했다.

 

코엑스의 상호 명칭변경도 배제 사유 중 하나다. 서울시지명위원회는 ‘행정동명 및 건물명 등 가변성이 있는 명칭’에 대해서 배제 기준을 두고 있다. 코엑스는 1998년 상호를 (주)한국종합전시장에서 (주)코엑스로 변경했다. KOEC에서 COEX로 영문명칭도 함께 변경했다.

 

개신교 단체의 주장에 대해 서울시 관계자는 “코엑스 관계자가 참석해 진술할 수 있는 충분한 기회를 주었을 뿐만 아니라 전문가로 구성된 지명위원회의 수차례에 걸친 논의 끝에 나온 결과”라며 “특정 시설 홍보를 위해 역명을 정하거나 병기하는 경우는 없다”고 밝혔다.

 

그럼에도 개신교 단체 대표들은 “강남구청과 서울시가 미숙한 행정처리로 불필요한 사회갈등을 야기시켰다”면서 “대안으로 역명을 ‘코엑스’로 하고 역내에만 ‘코엑스(봉은사)’로 명칭을 부착해달라”고 요청하는 등의 주장을 펴고 있다.

 

이같은 개신교 단체 주장에 불교계도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이다. 조계종 총무원 기획실장 일감스님은 “봉은사는 허허벌판이던 강남 부지에 1000년이 넘는 역사와 문화를 간직해 온 문화유산”이라며 “30년 역사도 되지 않은 코엑스를 봉은사역 대신 역명으로 지정해 달라는 것은 민족 정체성과 전통성에 대한 의미를 놓치는 것과 다름없다”고 강조했다.

 

봉은사는 신라시대 창건돼 1200년 동안 지금의 자리에서 도심 속 천년고찰로 깊은 역사를 지녀 왔다. 서울봉은초등학교, 봉은중학교, 봉은역사공원, 역삼동에서 삼성동까지 강남구 가로를 횡단하는 3.8km의 ‘봉은사로’까지, ‘봉은’ 명칭을 사용하고 있는 곳만 해도 다수다. 봉은사가 가지고 있는 수십개의 전통 문화재를 보기 위해 찾아오는 외국인 관광객 수만 해도 한해 25만명이 넘는다.

 

서울시 교통정책과 관계자는 “봉은사역 근방은 오래전부터 봉은 마을로 불려온 지역이며 역명 고유성과 지속성, 공익성에서 있어 검토된 사안”이라며 “역명제정 원칙과 예외사항을 명확히 해 향후 역명개정에 대한 논란 및 개정(병기) 가능성을 최소화하고 있다”고 밝혔다.

 

한편 한국기독교총연합회(대표회장 이영훈)와 한국교회연합(대표회장 양병희)은 지난 2월27일 서울 여의도 CCMM빌딩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봉은사가 서울시 역명 제정 원칙 중 하나인 ‘역사에 인접한 고적이나 사적, 문화재로 등록된 사찰이 아니라는 점’ 등을 들어 역명 철회를 요구했다. 개신교 단체에 의해 창간된 한 일간지 또한 개신교 단체 강남구교구협의회장 김인환 목사와의 인터뷰를 실어 “강남구는 구민30% 이상이 크리스천으로 서울시 25개구 가운데 기독교인 비율이 가장 높은 곳”이라며 “‘봉은사역’을 ‘코엑스역’으로 바꾸라”는 내용 등을 연속 보도했다.

   
역삼동과 삼성동을 가로지르는 봉은사로